51.   14 
전직 <시사저널> 여기자 다룬 <다큐 여자> 3주째 불방
추천 : 416 이름 : 시사기자단 작성일 : 2007-08-06 15:37:49 조회수 : 3,324
시사저널 사태가 될 뻔해서 다행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 과연 시사저널 사태와 다른 것인지도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방영 예정일(7월25일~27일)로부터 3주가 흘렀습니다. 이번 주 들어서야 EBS 사장이 방영은 한다, 는 원칙을 천명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언제 방영될 지는 알 수 없습니다. 방영을 위해 얼마나 프로그램을 도려내야 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사태의 개요를 알려드립니다.

EBS 프로그램 <다큐 여자>(7월25일 수요일)가 방영 2시간 전에, 방영 보류 판정을 받았습니다. 수요일 7시 경 상황입니다. 이 프로는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사흘 동안 9시20분부터 방영될 예정이었습니다.

전 시사저널 여기자들의 사연을 다룬 <다큐 여자> ‘굿바이! <시사저널>-희망을 보다’      편이 방영된다는 소식은 여러 곳에서 보도가 되었습니다. 예고편까지 나간 프로그램이 불방되었건만 방송에서는 아무 설명이 없습니다. 금요일에 가서야 시청자 게시판에 방영이 다음 주로 미뤄졌다는 알림 글이 떴고, 그 약속조차 지켜지지 않는 마당인데 또 꿩 구어먹은 소식입니다.  

시사기자단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왜 방영이 되지 않느냐는 문의 전화에 답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수~금 방송이 불방된 후 주말. 프로그램의 나레이션을 맡았던 안은주 전 시사저널 기자는, EBS 방송국으로 녹음을 하기 위해 들어갔습니다. EBS에서 방영 보류 판정을 받은 <다큐  다큐>가 수술대 위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삼성 기사가 빠졌다는 대목에서 ‘삼성’이라는 이름을 도려냈습니다. 삼성 이학수 부회장의 이름도 통째로 제거되었습니다. 서울문화사 심상기 회장과 금창태 사장의 이름이 나오는 대목도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심의를 넣었습니다. 방영 하루 전인 화요일 오전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보류.

기자들이 왜 길거리로 뛰쳐나왔는지, 그토록 <시사저널>로 돌아가고 싶어했다면서 왜 회사를 제 발로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프로그램이 방송에 부적합하다고 했습니다.  

안은주 기자의 말입니다.

“(첫 주 방영이 보류되었을 때) 누가 방영 보류 판정을 내렸는지, 정확한 이유조차도 파악되지 않았다. EBS 공정방송위원회가 파악하려 동분서주했으나 EBS 내에서 방송 연기 결정을 내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결정은 내려졌다. 다음 날 저녁에서야 대강의 사유가 파악되었다. 개인이 아닌 집단, 시사적 이슈에 천착한 작품이기 때문에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집단이 아닌 개인에 집중하라, 명예훼손의 여지가 있는 부분은 넣지 마라는 EBS의 주문대로 다시 편집되었다. 편집된 원고를 보자마자 나는 나도 모르게 “지난 번 것보다 재미가 없네요. 김 빠진 맥주같아요”라고 투덜거렸다. 김민정 피디도 인정하면서도 속상해하고 아쉬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원본 편집에서는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했을 뿐인데,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여기자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부각되었다. 사태 이후에도 꼬박 반년동안 취재 일선을 지키며 회사와 대화하려 안간힘을 썼던 기자들은 사주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 위해 단식을 시작했다. 그러나 단식 농성장에는 사주 대신 회사 사람들이 나타나 행패를 부렸고, 그들의 행패를 보면서 결국 <시사저널>과는 이별할 수밖에 없겠다고 절감하게 되었다. 그토록 <시사저널>을 사랑한다면서 제 발로 <시사저널>을 걸어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부분이 빠져서는 안되는데, 새로 편집된 작품에서는 이 부분이 통째로 빠졌다.

  그러나 새로 편집된 프로그램도 또 제동이 걸렸다. 이번에는 너무 편파적이라는 것이었다. 김민정 피디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EBS 소속의 피디가 아닌 외주 제작사의 프로듀서였으므로. 방송 연기 또는 불가 결정이 내려질 때마다 그녀는 그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참여할 수도, 결정 사유를 직접 들을 수도 없었고, 자기가 왜 이 프로그램을 이렇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도 직접 설명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결론은 퍽 간단합니다.

가파른 사건 속의 인물은, 이른바 휴먼 다큐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파른 사건과 그 인물이 구별되지 않을 때, 그 인물을 결코 ‘휴먼한’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삼을 생각을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안 그러면 왜 굳이 ‘휴먼’이라는 타이틀을 붙였겠습니까.

<다큐 여자>의 김민정 PD는 그 ‘당연한’ 규범을 모른 채 새 규범에 도전한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중입니다. 그것도 방송국이라는 안전한 울타리도 없는 처지에 말이지요.  

시사기자단이 이 사태를 취재하면서 느낀 점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금창태 사장이 나은 점도 있다. 그는 적어도 자신이 뺏노라고, 당당히 말했습니다.  그러나 EBS 사태 초기, 도무지 누가, 뭘, 왜 결정했는지 파악하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결정을 내린 주체는 선명하지 않았으나, 결정은 확실했습니다. 그나마 금창태 사장이 낫습니다.

둘째, 타격이 두려우면 뭉개라. <다큐 여자>는 외주 프로그램입니다. EBS 내부에서 이 사안에 대해 발언할 자격이 있는 이는, 이 프로그램의 제작진이 아니라 EBS의 내부 담당자입니다. 이 담당자가 바뀌어 일이 더 꼬인 셈인데, ‘굿바이! <시사저널>-희망을 보다’ 편을  기획한 EBS 해당팀장은 오히려 경위서를 써야 했습니다.

사태 파악은 지체되었고, EBS 노조로서도 개입할 경로를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사태 초기, 누가 심의에서 보류 결정을 내렸는지, 담당자 입장이 무엇인지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결론! 관계자가 뭉개주면 일은 손쉽게 엉킬 수 있다. 시사저널 사태에서는, 아쉽게도 담당자인 편집국장이 그러질 못했습니다. EBS처럼 기사를 보완해서 실으라, 고 했을 뿐인데 사표를 집어던졌습니다. 그리고 ‘보완해서 실으면 되지 않느냐’고 했던 회사는 덜컥 그 사표를 수리했습니다.

EBS 사태가 <시사저널> 사태와 달리 조용히 넘어가고 있는 데에는 이런 차이가 깔려 있습니다. 무척 단순하지요? 네, 단순합니다. <시사저널> 편집국장이 사표만 안 던졌어도, 이렇게 가파른 사태가 오지 않았을 텐데 말이지요.

셋째. 불방 3주째. 프로그램의 재수술을 맡은 새로운 담당자께 아룁니다. 알고 보니 이 프로에는 원래 합당한 담당자가 따로 있었다고 합니다. EBS 고위층이 그걸 새로 발견한 까닭에 담당자가 또 바뀌었습니다. 재수술을 집도하게 된 김아무개 담당자님! EBS 프로듀서협의회 회장님이시라구요. 수정에는 덜어내는 것만 있는 게 아닐 겁니다. 수술에 동참했던 안은주 기자에 따르면, 행동하는 아줌마 기자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솜씨있는 재수술 기대합니다.

넷째. 이런 풍파없이 조용히 수술이 끝난 예도 있습니다. EBS <지식채널e>라는, 영감 넘치고 세련된 프로그램 있지요? 예민한 시사저널 사태를 다루는 바람에 이 프로의 담당 프로듀서도 적지 않이 마음 고생을 했습니다. 지난 7월31일(월) 방영 예정이었던 이 프로그램도 방영 당일 몇 시간 전에 보류 판정을 받았거든요. 담당자, 개겼습니다. 이튿날 회사 관계자와 협의 거쳐 수정했고, 화요일에 방영되었습니다. 그 수정의 폭에 대해 토 달지 않겠습니다.

<지식채널e>에 단 한번도 삼성이라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도, 기자직 24명 가운데 17명이 징계를 받는 참담함 속에서도 기자들이 6개월이나 일선을 지키다가 파업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도 유감을 품지 않습니다. 굳이 그 프로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려져 있을테니까요.  

정말입니다. 하루 만에 합 겨루기가 끝나, 프로가 방영된 것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것은 EBS 내부 프로듀서이기에 가능했던 일이겠지요.


우리의 바람은 단 하나. 더 이상 <다큐 여자>가 표류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 그 뿐입니다.

                                                                                                                                                                                                                     시사기자단 8월6일.
이근홍   2007-08-06 17:14:02 IP :   
힘내세요 화이팅 <다규여자>
임반석   2007-08-07 01:55:08 IP :   
ㅅㅂ... 사실... 이러니까 다른 언론들이 다 이 모양이니까...
지들이 겪은 일도 아니면서 그것, 사실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니까...
독자들은, 시청자들은... 시사in 기자분들에게 지지와 공감을 표하는 겁니다... 슬프지만 사실입니다...
아니 또 한편으로 시대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가시는 겁니다...
최민석
  
2007-08-07 21:20:56 IP :  
........ 공중파에서 남은건 <지식채널e>밖에 없는 건가요.
정구영
  
2007-08-12 07:06:39 IP :  
언론 간섭이 그정도로 심할줄은 몰랐네요.
김경화
  
2007-08-21 12:09:08 IP :  
헛. 다 도려내고 남은 것은 무엇일지.. 어찌되었건 무한한 기대..
정예원
  
2007-08-26 21:03:56 IP :  
오늘 봤습니다 ^^ 우리나라에 이런 좋으신 분들도 있다는 것에 대해 감동받았습니다.
이은지   2007-08-26 22:02:44 IP :   
저두 오늘봤어요. 보자마자 정기구독 신청하러 달려왔다는... 힘내세요!
임은선   2007-08-27 11:12:49 IP :   
어제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여자 다큐를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사회는 부정과 부패가 얼룩지고 안좋은 사건들도 넘쳐나지만 ]
이런분들이 계시기에 우리사회가 돌아가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부디 지금의 그 초심을 잃지 않고 나태해지는 순간에 바닥까지 갔던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이름을 지어주신 모든 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 수상자 공지 [14]
날아라, 펜! 창간 선포식에 모십니다. [20]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이메일 : true@sisaj.com | 전화번호 02-3700-3200 | 정기구독 02-3700-3203 ~ 3206
주소 : 110-090 서울 종로구 교북동 11-1 부귀빌딩 6층 <시사IN> 편집국
정기구독 약정계좌 : 국민은행 533337-01-002330 (주)참언론
투자금 입금계좌 : 우리은행 1002-134-796096 유옥경
후원금 입금계좌 : 농협 100102-56-002472 유옥경시사기자단
Copyright(C) 2007 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 All rights reserved.